‘암살자(들)’ 역사 논란,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은 구분돼야 한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재구성…배후 가설 놓고 역사 왜곡 논란과 창작의 자유 충돌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한 영화 평론을 넘어 현대사 해석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허진호 감독의 이 작품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사건의 배후를 추적한다. 특히 당시 박정희 대통령 측이나 중앙정보부 등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는 장면이 포함되면서, 기존 수사 결과와 다른 해석을 영화적으로 제시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제작진은 영화가 새로운 역사적 결론을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하려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 사건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 영화는 허구일 수 있지만, 소재는 실제 역사다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하는 것은 창작의 영역이다.
그러나 실존 인물과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다룰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객에게 영화적 상상인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인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극적 장치가 실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기억과 정치적 해석이 축적된 사건이라면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영화가 질문을 던지는 것과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확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 ‘역사 왜곡’이라는 여론, 다만 조사 성격도 함께 봐야
최근 개혁신당 산하 개혁연구원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영화의 배후 의혹 제기를 **‘역사 왜곡’이라고 본 응답이 58.2%, ‘창작의 자유’라고 본 응답이 27.6%**로 나타났다. 다만 이 조사는 특정 정당의 정책연구기관이 실시한 조사인 만큼 결과를 전체 국민의 확정된 판단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정치권과 관련 단체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영화가 역사적 비극을 왜곡했다며 공식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고,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반대로 제작진은 작품을 특정 역사적 결론을 확정하는 영화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결국 현재의 핵심 쟁점은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재구성의 경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있다.
■ 더 우려되는 것은 배우를 향한 2차 공격
영화에 대한 비판과 영화에 출연한 배우 개인에 대한 공격은 구분해야 한다.
현재 논란은 일부 배우의 SNS와 광고 활동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번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해진 등 출연 배우의 SNS에 항의성 댓글이 이어졌고, 그가 모델로 등장한 광고 영상에서는 댓글 기능이 제한되기도 했다.
영화의 역사적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감독과 제작사, 작품의 내용에 대해 공개적으로 검증하고 비판하면 된다.
배우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무차별적인 불매 압박으로 논쟁의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역사 논쟁이 또 다른 혐오와 진영 갈등으로 번진다면 정작 검증해야 할 영화의 내용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 필요한 것은 ‘검열’보다 정확한 정보다
이 논란에서 중요한 대안은 무조건적인 상영 중단이나 무조건적인 창작 면죄부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실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관객이 영화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구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가설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면 영화의 성격을 명확하게 고지하고, 관객이 실제 기록과 영화적 설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학교 등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경우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영화를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는 자료로 사용하는 것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창작물로 감상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역사에는 ‘팩트체크’가 필요하고, 영화에는 ‘창작의 자유’가 필요하다
이번 논쟁에서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 커져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창작자는 실제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올 자유가 있고, 관객은 그 작품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자유가 있다.
동시에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주장에는 무엇이 기록으로 확인된 사실인지, 무엇이 영화적 가설인지 구분할 책임도 따른다.
특히 실제 인물과 유족이 존재하는 사건이라면 그 경계는 더욱 선명해야 한다.
영화가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를 막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질문을 던졌다면 그 질문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상상인지 관객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역사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이번 ‘암살자(들)’ 논란 역시 결국 이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상영 여부를 둘러싼 진영 대결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영화 속 주장과 당시 기록을 하나씩 대조하고, 사실과 가설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표현의 자유도 지키고 역사에 대한 책임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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